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눈앞에 펼쳐졌던 커다란 오락기 화면과 전투의 짜릿한 손맛을 기억한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그 시절의 비디오 게임. 그런데 그중에서도 “잠마배선”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실 이 단어는 공식적인 게임 명칭이라기보다는, 오래된 기억 속 어렴풋한 단어 조각, 또는 잘못 기억된 명칭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단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글을 통해 그 정체를 추적하고 아날로그 감성의 오락실 문화와 맞물려 있던 비디오 게임 ‘잠마배선’의 가능성을 하나씩 살펴보려 한다.
‘잠마배선’은 게임 이름일까, 회로일까?
우선, ‘잠마배선’이라는 단어를 분석해 보자. “잠마(Zamma)”와 “배선”이라는 두 단어로 나눌 수 있다.
- 잠마는 앞서 설명했듯이 북아프리카의 전통 보드게임 이름이기도 하고, 일부 고전 게임 커뮤니티에서 언급된 해적판 게임 또는 발음상의 오류로 추측되는 단어다.
- 배선은 말 그대로 전기 회로나 기기 연결과 관련된 기술 용어다.
그렇다면 ‘잠마배선’은 게임 이름 과 회로 기술의 결합된 단어일 가능성이 있다. 이 조합은 특히 과거 오락기 수리 기술자나 아케이드 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서 쓰이던 내부 용어 또는 별명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오락실 기기의 배선 시스템, 그 안의 ‘잠마’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는 동네마다 크고 작은 오락실이 있었다. 펌프, 철권, 보글보글, 캐딜락과 공룡 등 수많은 게임이 운영되었고, 이 기기들은 대부분 정식 유통보다는 PCB 기판과 JAMMA 배선 방식으로 설치된 시스템이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핵심 단어가 바로 JAMMA(잠마)다.
JAMMA란?
JAMMA는 Japan Amusement Machinery Manufacturers Association의 약자로, 1980년대 중반부터 아케이드 게임 기기 간의 호환성을 위해 표준화된 배선 규격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의 오락기 케이스에 여러 개의 게임 기판을 꽂아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 배선 방식이다.
이를 통해 게임기 내부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기판만 교체하여 새로운 게임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JAMMA 방식은 전원, 오디오, 비디오, 조이스틱/버튼 등 다양한 신호를 하나의 56핀 커넥터로 연결하도록 설계되었다.
즉, ‘잠마 배선’은 비디오 게임 기기의 핵심 배선 시스템이었던 JAMMA 배선을 일컫는 말로, 기술자 또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사용되던 속칭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락실 사장님들의 은어? ‘잠마배선 교체해라’
당시 오락실 업계에서는 JAMMA 배선에 따라 게임을 교체하거나 수리하는 일이 잦았다. 예를 들어, 철권3 기판을 철권 5로 바꾸려면 조이스틱 버튼 수가 다르거나, 영상 출력 방식이 다를 수 있는데, 이럴 때 JAMMA 배선을 일부 개조하거나 전용 변환 커넥터를 사용하는 식으로 대처했다.
실제로 이런 배선을 다루던 기술자나 업주들은 입에 익은 표현으로 “잠마배선 갈아야겠네”, “이건 잠마배선이 아니라 커스텀이라 안 맞아”라는 식으로 대화했을 것이다.
즉, ‘잠마 배선’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게임 명칭이 아니라, 오락실 기기 세팅의 기술적 근간이자 오락실 세대의 기억에 남은 기술 용어로 자리 잡은 셈이다.
게임 이름으로 착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지만 기기 내부에는 관심이 없었던 일반 유저 입장에서는, 오락실에서 주워들은 ‘잠마배선’이라는 말을 게임 제목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형, 저번에 했던 그 격투 게임 이름이 뭐였지? 잠마 뭐였잖아.”
“잠마배선이 있는 게임은 잘 나가는데, 이건 잘 안 돼.”
이런 말들을 듣고 자란 90년대생이나 오락실 세대 일부는, 그 말을 하나의 게임 명칭처럼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 용어가 문화적 상징어로 변질되는 사례는 게임 역사에서도 흔하다.
오늘날에도 쓰이는 JAMMA 시스템
놀랍게도 JAMMA 시스템은 오늘날에도 일부 복각 기기나 레트로 아케이드 시장에서 사용된다. 예를 들어:
- MAME 머신 (고전 게임 에뮬레이터 기기)
- DIY 오락기 제작 키트
- 일본 중고 아케이드 부품 사이트
이런 곳에서는 아직도 ‘JAMMA 배선도’, ‘JAMMA 신맵’, ‘JAMMA to HDMI’ 같은 자료들이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고전 게임의 감성과 하드웨어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겐 잠마 배선은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다.
결론: ‘잠마 배선’은 게임 그 자체보다 깊은, 오락실 문화의 상징입니다
정리하자면, ‘잠마 배선’은 특정 게임의 이름이 아니라, 비디오 게임 아케이드 기기의 표준화된 배선 시스템(JAMMA Wiring)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기술 용어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오락실을 풍미했던 세대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성, 기술, 그리고추억의 상징입니다.
당신이 만약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잠마배선 고장 났나?”, “기판 바꿔”라는 말을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있다면, 당신도 그 문화의 일부였던 당신에게 그 기억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그 ‘잠마배선’이 흐르던 시간 속으로 돌아가 조이스틱을 쥐고, 철커덕 소리가 나는 버튼을 누르며, 한 판 더,를 외칠 수 있습니다.